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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정보

치과교정학 - 역사

by 파인즈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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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교합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기원전부터 이어져 왔다. 치아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고안된 단순한 장치가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멕시코의 마야 무덤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교정치료의 시작은 17세기 이후의 프랑스 궁정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치과교정학의 역사

 

1728년부터 1888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66권의 의학서가 간행되었으며, 부정교합에 관한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 치과교정학으로의 발전은 미국의 Edward H. Angle(1855~1930)의 공적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ngle은 1800년대 말에 치과교정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치과교정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취급할 것을 제창하고 1900년에 "Angle School of Orthodontia"를 설립해서 처음으로 교정학을 분리된 학문으로 가르쳤다. Angle은 많은 교정장치를 고안했는데, 그중에서 1926년에 발표한 에지와이즈(edgewise) 교정장치는 오늘날에도 임상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Angle의 부정교합 분류법은 오늘날의 임상에서 세계적인 공통용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Angle과 쌍벽을 이루는 C. Case는 교정치료에서 때로는 부득이하게 발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발치 불가피론"을 전개하였으며, Angle의 제자인 Charles H. Tweed는 발치치료를 하면서 트위드 식의 교정치료 기법을 완성하였다. 

Begg는 그의 학위논문에서 "인간은 원래 조개류나 거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치아에 마모가 생겨 결국은 자연적으로 치아의 폭경이 좁아지므로 조물주가 좀 더 많은 치아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나 현대인은 음식을 조리해서 먹기 때문에 마모가 일어나지 않아 결국 총생(crowding)이 발생하므로 여분의 치아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Edward H. Angle

현대 교정학의 아버지. 많은 교정장치를 개발했고 비발치 치료를 선호했다. 

 

▲ Charles H.Tweed

치아와 악궁간의 부조화를 개선하기 위해 발치치료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두개안면 골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치아뿐 아니라 안면골격 교정에 이르기까지 교정학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노르웨이의 Andresen 등에 의해 기능적 악교정법(activator)이 보급되었는데 장치의 구조가 간단하고, 자유로이 구강내에 장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고정식 교정장치인 에지와이즈법에서 사용된 직사각형 와이어(wire)는 당초의 백금에서 스테인레스강(stainless steel)으로 바뀌어 단단해졌는데, 이는 치아나 치주조직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주었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이 직사각형 와이어를 대신해서 보다 미세하고 탄력이 풍부한 둥근 와이어를 이용하는 Begg법이 소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이 방법은 Jarabak에 의해 에지와이즈법에도 받아들여졌는데, light wire 에지와이즈법으로서 정착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브라켓(bracket)을 용접한 금속 밴드를 치아에 감아 시멘트로 합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그후 접착제에 의해 브라켓을 직접 법랑질 표면에 접착하는 방법인 직접 접착법(direct bonding method)이 개발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교정력에 의해 치아가 단단한 치조골 속에서 이동하는 기전이 밝혀짐에 따라 교정치료의 적용 연령층이 확대되었으며, 또한 투명한 브라켓이 개발됨으로써 성인 교정치료에 박차가 가해졌다. 현재는 금속색 와이어 대신 투명한 교정용 와이어도 등장하였으며, 심미적인 목적으로 인해 설측에 브라켓을 붙이는 설측 브라켓(lingual bracket)도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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